한번 들어가면 반나절은 훌쩍가는 복합문화공간
브랜드의 감성과 취향을 집대성한 복합문화공간 4곳을 다녀왔다. 한번 들어가면 반나절은 훌쩍 간다.
챕터원 에디트
2013년 시작된 라이프스타일 리빙숍 챕터원이 성북동 챕터원 꼴렉트에 이어 선보인 세 번째 공간이다. 리빙 제품, 주거 공간을 제안하는 두 매장과는 조금 결을 달리했다. 챕터원 에디트는 공예와 예술작품에서 파생하는 리빙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한다. 아시아 고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가득한 4층짜리 공간은 자체 제작한 향과 사운드를 더했다. 이동하거나 머무는 동안 은은한 향이 따라와 ‘이 좋은 향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증이 일고, 자연의 소리를 베이스로 한 음악이 고요하게 흐르는 점이 이곳에서의 시간을 특별하게 한다.
챕터원 에디트는 오전 10시, 1층의 카페 파운드 로컬부터 문을 연다. 모로칸 민트 티, 호지 블렌딩 티, 루이보스 티를 제공하는데, 국내 작가들의 멋스러운 공예 작품에 음료를 낸다. 날이 좋으면 메뉴를 주문해 바깥의 정원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참고로 저녁 7시부터는 비스트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전국 각 지역의 식재료를 활용해 한식을 베이스로 한 건강한 음식을 판매한다. 우엉 소갈비찜과 아보카도 비트 사시미 등이 인기 메뉴라고. 파운드 로컬에서 가볍게 티타임을 마치면 오전 11시에 오픈하는 위층의 숍을 본격적으로 둘러보자. 80~90년대 수석, 분재, 박제 그리고 다양한 아시아 국가에서 발굴한 토기 제품들이 정연하게 펼쳐져 있는 2~3층은 마치 취향의 박물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을 법한 오브제를 일상에서 어떻게 연출, 활용이 가능할지 편하게 제안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챕터원 에디트에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는 국내 작가들과 챕터원의 기획력이 더해져 제작된 제품이 70% 이상이다. 약 30명의 국내 작가들과 협업하고 있으며 나머지 30%는 챕터원 에디트 콘셉트와 결이 맞는 아시아 제품을 취급한다. 4층의 갤러리 도큐먼트는 전시공간이다. 사계절에 맞는 전시를 매 시즌 창의적인 연출을 통해 선보인다. 전시 콘셉트에 맞춰 2, 3층의 숍 공간에는 관련 오브제를 두어 전체 공간이 갖는 일관성도 챙겼다. 지금은 오픈 이후 두 번째 전시인 <TIMELAPSE>가 한창이다.
챕터원 에디트를 기억하는 방법 중 가장 분명한 것은 ‘향’을 통해서다. 후각이 예민하다면 층별 공간이 달라짐에 따라 변하는 향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1층의 파운드 로컬은 쑥과 패출리 향, 2~3층의 숍은 수목원 향, 4층 전시관에서는 전시 <TIMELAPSE>를 오픈하면서 개발된 동명의 향이 머무르고 있다. 공간에 머무는 향을 신경 쓰는 이유는 향과 함께 기억되는 공간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챕터원 프라그런스라는 이름으로 판매도 하고 있으며, 곧 룸 스프레이로도 만날 수 있다. 챕터원 에디트는 하반기에 패션 브랜드를 소개한다. 의식주 통합 서비스를 진행함에 따라 올해 새롭게 시도하는 프로젝트다. 수공의 미학을 탐구하는 챕터원 에디트와 맥을 같이하는 브랜드를 데려온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주소 서울 서초구 나루터로 65 문의 02-3447-8001
피크닉
피크닉과 만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회현역 4번 출구와 연결되는 경사진 길을 올라 피크닉 건물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거나 회현역 3번 출구에서 좁고 작은 골목골목을 산책하다가 숨어 있는 후문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 분명한 건 어느 쪽으로 가도 피크닉으로 향하는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는 거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자리한 이곳은 1970년대 제약회사 건물이었다. 어떤 건 허물고 어떤 건 새로 들이는 재생 건축을 통해 지금의 공간을 완성했다. 전시 기획사 글린트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오픈하자마자 별다른 홍보 없이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정문에 들어서기 전, 투명 유리창 안의 작은 텃밭은 다이닝 신에서는 꽤 알려진 박미영 농부가 직접 농작물을 심고 가꾼다. 3층 테넌트인 레스토랑 ‘제로컴플렉스’와 1층의 ‘카페 피크닉’에서 주로 사용하는데, 이곳에서 수확한 민트로 가니시를 하거나 티를 만드는 식이다.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 카페 피크닉은 10여 개의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런웨이가 펼쳐지는 듯한 긴 테이블이 인상적이다. 헬 카페 원두로 내린 커피, 밀크 티, 제주도 구좌당근주스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메뉴. 디저트는 치즈케이크 한 종류만 있는데, 만드는 데 꼬박 3일이 걸려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 그마저도 인기가 많아 금방 동이 난다. 통유리로 햇살이 비치던 카페는 저녁 6시가 되면 커튼을 치고 변신을 준비한다. 테이블 위에 커틀러리와 와인 글라스를 세팅하는 순간 내추럴 와인을 파는 타바스 바가 된다. 개성 있는 캐릭터와 합리적인 가격의 내추럴 와인 리스트업으로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3층에 자리한 제로컴플렉스는 향기로운 꽃과 허브, 갖가지 자연의 재료로 만든 이충후 셰프의 아름다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미쉐린 1스타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이른 오전, 카페 피크닉에서 티타임을 갖고, 지하부터 루프톱까지 이어지는 전시를 본 뒤(현재 류이치 사카모토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배가 출출해질 때쯤 이곳을 찾으면 딱이다. 피크닉의 또 다른 테넌트인 독립상점 ‘키오스크키오스크’는 70개 이상의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와 출판사의 제품을 취급한다. 아기자기하고 특색 있는 물건들로 채워져 있어 들어가면 반드시 뭐 하나는 손에 쥐고 나오게 된다.
피크닉의 백미는 단연 남산이 보이는 루프톱이다. 따로 마련된 푹신한 의자에 앉아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감상하다 왼쪽으로는 빌딩 숲, 오른쪽으로는 초록숲이 펼쳐지는 옥상 뷰를 보며 쉴 수도 있다. 옥상에는 데크가 깔려 있는데 비가 내리면 나무 향이 피어 오른다고 한다.
그 순간 류이치 사카모의 곡 ‘Rain’을 들어볼 수 있는 곳이 피크닉이다. 전시가 끝나는 10월 14일까지는 비를 만날 수 있다.
주소 서울 중구 퇴계로6가길 30 문의 070-8821-6374
플라스크 남산
2006년에는 젊은 에너지가 가득한 홍대에, 2011년 서촌의 조용한 골목에 자리했던 ‘마켓엠’ 본점이 올해 5월, 남산으로 이사를 왔다. ‘플라스크 남산’이라는 새 이름에 새 각오를 더한 채. 한데 왜 남산일까? 남산동은 명동과 남산타워, 숭례문에 가까워 역사와 문화, 다채로운 볼거리가 공존하는 곳이자 바쁜 도시의 일상과 여유로운 자연의 풍경이 혼재하는 입체적인 장소다. 마켓엠은 서울의 정취와 생기가 넘치는 이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숍 이름 ‘플라스크’는 새로운 실험을 위해 무언가를 담는 투명한 플라스크처럼, 가치 있는 일상을 만들어줄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층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소품들뿐 아니라 디퓨저, 핸드워시, 핸드크림, 타월 등 생활 전반에 필요한 다양한 제품을 다룬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키워드로 구성한 타이포그래피와 남산타워를 모티브로 한 제품들도 준비했다. 문구 덕후라면 ‘델포닉스(Delfonics)’도 눈여겨 볼 것. 디자인 문구와 잡화를 취급하는 일본의 스테이셔너리 브랜드로 한국에서는 플라스크가 처음으로 공식 론칭했다. 참고로 지하 주차장을 갖추고 있어 양손 한가득 문구와 잡화 쇼핑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짐 걱정이 없겠다. 2층은 호주의 ‘문샤인 커피(Moonshine Coffee)’와 관련 굿즈를 만날 수 있다. 문샤인 커피는 마켓엠이 호주 바이런베이에 출장을 오가며 알게 된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자라난 건강한 커피를 한국에 소개하겠다는 취지로 문샤인 커피와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으며 고심해서 데려온 브랜드다. 로스팅 후 3일 안에 항공 특송된 원두를 사용해 현지 그대로의 맛과 풍미를 즐길 수 있다. 3층 카페 라운지는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장으로 사용된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와의 만남,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한편에는 1, 2층과는 다른 분위기의 상점인 베이거 하드웨어(Beiger Hardware)가 자리하고 있다. 견고하고 기능성을 더한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워크웨어, 생활용품, 가구 등을 취급해 남성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는 곳이다. 아직 공개 전인 4층은 도자기, 패브릭, 가구류를 만날 수 있는 쇼룸으로, 5, 6층은 레스토랑과 루프톱으로 꾸밀 계획이다. 마켓엠의 감성을 담아 어떤 공간으로 완성될지 기다려지는 이유다.
주소 서울 중구 퇴계로20길 13 문의 02-2038-2141
사운즈 한남
약 600평 규모의 대지에 낮은 다섯 동의 건물이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공간. 그곳에 13개의 상점, 광장, 오피스, 1~2인 레지던스가 어우러져 있다. 사운즈 한남은 약 8년간 매거진, 외식, 호텔, 오피스, 리테일 분야의 다양한 크리에이티브 업무를 전개해온 제이오에이치가 그들의 경험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4월 오픈 이후로 컬처 피플들의 입과 SNS에 꾸준히 오르는 이유는 이들이 제안하는 ‘도심 속 휴식’이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콘셉트는 ‘어반 리조트’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영감을 주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가게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쉼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는 취지에서다. ‘도심 속 쉼’을 완성하기 위해 건축 디자인에도 세심한 공을 들였다. 건물의 각도를 일부러 비틀고, 높낮이를 다르게 해 재미를 주고, 창문의 모양과 위치를 조금씩 달리해 건물 안팎으로 마주하는 풍경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걷다 보면 골목, 광장, 터널 같은 의외의 장소가 나타나 구석구석 탐험하게 되는 미로 같은 매력도 있다. 그길 사이사이 한식 가정식 식당인 ‘일호식’, 모던 비스트로 ‘세컨드 키친’, 아이웨어 숍 ‘오르오르’, 필립스 경매, 갤러리 ‘가나아트 한남’, 이솝 등 다양한 레스토랑과 라이프스타일 숍이 알맞게 자리하고 있다.
반드시 들러보기 추천하는 곳은 4층으로 된 서점 ‘스틸북스’다. 통유리를 통해 보이는 커다란 계단과 조명이 특징인 공간으로 층별로 매거진, 생활, 디자인, 예술, 사유 등 일상을 포괄하는 주제의 책들과 생활용품, 오브제 등을 선보인다. 북 큐레이터가 상주해 세심한 책 추천도 받을 수 있다. 매거진B와 연계해 문화 이벤트도 열리니, 참가하고 싶다면 스틸북스의 인스타그램(@still.books)을 팔로우하자. 건물 5층은 곧 새로운 콘셉트의 가게가 들어온다. 낮에는 티 카페, 밤에는 바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서점 바로 앞 ‘카페 콰르테’는 가볍게 들르기 좋다. 유난히 맛있는 빵집이 모여 있는 한남동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빵 맛집이 됐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와 전문 베이커가 만든 빵과 샌드위치, 수프 등을 파는데, 폭신한 머랭 흰자로 구름을, 치즈로 노른자를 표현한 클라우드 에그번이 시그니처다. 취향껏 빵과 커피를 고르고 단지 중정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여유로운 쉼을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꼭 산으로, 들로 나가야 기분 좋은 휴식과 행복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주소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 35 문의 02-511-7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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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최안나
- 포토그래퍼
- Cha Hye Kyung, Jeon Byung 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