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도 통역이 될까요?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팀워크를 발휘해야 하는 회사 생활. 답답하기만 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가득하다면, 버크만 진단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길. 나는, 당신은 어떤 성향의 직원일까?
어느 날, <얼루어> 편집부 전체의 메일함에 버크만 진단에 참여해달라는 메일이 도착했다. ‘버크만 검사를 하시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라는 인사말과 함께 메일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버크만 검사는 팀 빌 딩, 임원 코칭, 리더십 개발, 경력 관리, 대인관계 개선을 돕는 첨단 성격 검사 도구로서 60여 년간 사내 HR 전문가, 프리랜서 컨설턴트, 임원 코 치, 교육기관 및 기타 비영리기관에서 250만여 명이 사용해온 세계적으 로 공인된 검사지입니다.’
약 30분이 소요될 거라는 친절한 안내 메일처럼 질문은 많고 많았다. 질 문은 나 자신에 대한 것부터 ‘대부분의 사람은’으로 시작하는 질문까지 다양했다. 총 298문항은 세 파트로 나뉘어 ‘당신이 대부분의 사람에 대 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당신이 당신 자신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 각은?’ 그리고 직업별 관심도 선택으로 이어진다. ‘본인이 각 직업 수행 을 위한 기술과 능력, 각 직업에 대한 급여 및 근무시간은 동일하다고 가 정하십시오’라는 말에 따라서, 나는 화학 교사가 되고 싶은지, 정수기 판 매원이 되고 싶은지, 회계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 다. 어떤 문항은 아무것도 되고 싶은 게 없어서 쩔쩔맸지만, 이런 검사가 늘 그렇듯 뭐라도 체크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 게 30분여 만에 답변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사 회과학대 출신인 나는 대학에서는 물론 이후 많은 회사에서 비슷한 유형 의 검사를 다수 해왔기 때문이다. 십여 년이 흐르는 사이 검사 결과가 조 금 달라지기도 했다. MBTI 성격 유형 검사의 경우 ENFP 유형이던 것이 어느 순간 ENTP로 바뀌었으니까. 하지만 어차피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 이 ISTJ인데, 내가 ENTP든, ENFP든 뭐가 중요할까? 게다가 십수 년간 회사를 다닌 미생으로서 깨달은 것은, 회사와 팀은 내가 적응해야 할 문 제라는 것이다. 거기에 개인의 성향은 중요하지 않았다.
버크만 진단이란?
호기심에 버크만 진단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버크만 진단(Birkman Method)은 195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 버크만 박사가 개발한 개인 특성 진단으로 250만 명 이상 진단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진단은 ‘회사’를 배경으로 한 개인들의 경험적 연구에 따라 고안되었다. 버크만 박사는 ‘욕구’가 사람들의 행동과 동기를 좌우한다고 보았다. 욕구는 사회적 상황에서 사람들이 대인관계와 환경에 대해 갖는 기대다. 이 욕구는 충족되기도 하고, 좌절되기도 하는데, 바로 이때의 행동을 설명해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다양한 성격 유형 검사가 그렇듯, 이 테스트 역시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들여다보는 것이 목적이다. 그중에서도 버크만은 일을 할 때의 개인이 가진 역량과 흥미, 그리고 숨은 욕구와 행동 방식,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행동 양식을 보려 한다. 이 점은 이 버크만 테스트를 기업에서 활용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 스스로뿐만 아니라 회사 역시 이 직원이 이 직무에 적합한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궁금해할 테니 말이다. 이것은 곧 팀의 생산성, 항상성과 직결되는 문제니까. 특히 스트레스 요인이 도처에 있는 회사에서는 각자가 가진 스트레스를 매끄럽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중요한 법이다. 많은 회사에서 기꺼이 비용을 들여 이 진단 프로그램을 팀 트레이닝에 활용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며칠 후 나의 성향에 대한 결과 리포트가 도착했다. 각자 받은 리포트를 바탕으로 팀 트레이닝을 할 예정이니 미리 읽어보라는 것. 그렇게 모두가 큰 회의실에 모이게 된 것이다.
일할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약간 심드렁한 마음으로 질문에 답했던 나는, 결과지를 받고서 조금 흥미가 생겼다. 결과지 속의 ‘나’는 사분할된 도표들 속에서 점으로 존재하고 있었는데, 나는 창의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파란색’ 성향이었다. 그런데 나의 파란색은 다른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과 아주 가까웠다. “사분면에서 당신의 다이아몬드 기호는 파란색에 있지만, 초록색에도 아주 가까이 위치합니다. 이러한 특징을 보이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통찰력과 설득력을 발휘하며 행동합니다. 빨간색과 노란색에도 가깝습니다.” 이 진단은 그러므로 내가 이렇게 행동할 거라고 설명했다. “사려 깊고 심사숙고한다, 통찰력 있고 낙천적이다, 경쟁적이다, 열정적이다,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 흥미로운 건 그 다음이었는데, 내가 어떤 환경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내는가였다. 마치 영화 <그녀>에 나오는 인공지능 사만다처럼 결과지가 다음과 같이 속삭이는 듯했다. “당신은 이럴 때 편안함을 느껴요. 가치를 인정해줄 때, 논리뿐만 아니라 상대의 감정에도 관심을 기울여줄 때, 복잡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간을 줄 때, 혼자 또는 한두 명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 그런가?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회사 생활이 힘들었던 때를 떠올려보았다. 그 다음은 스트레스 행동에 대한 설명이다. 다시 사만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렇게 바뀌죠. 위축되고, 피로해지고, 우유부단해지며 비관적인 생각을 많이 해요. 그렇지 않나요?” 이쯤 되면 용하다. 검사지는 그 다음으로 내 직업 적성지향점을 기획과 전략, 영업과 마케팅, 운영과 기술, 관리와 회계 순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제각기 다른 팀원들의 결과도 흥미로웠다. 비슷할 수는 있지만 누구도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최근 신규입사자가 많은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는 낯선 단계였다. 편집부에서 가장 오래 근무했다는 영광스러운(?) 기록을 보유한 나 역시, 새로운 팀에서 내가 필요한 사람일지 고민하느라 잠을 설치곤 했다. 우리는 촬영을 하거나, 출장을 가거나, 마감을 하느라 서로의 얼굴을 생각보다 많이 보지 못한다. 때문에 나는 내 것뿐만 아니라 편집부 모두의 내용을 유심히, 신기하게 보았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런 줄 몰랐는데!’의 환호성은 여기저기서 들렸다. 결과 리포트를 받고 유심히 서로를 관찰하게 되고, 한번쯤 생각해보게 되었다. 좋은 화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최적의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이래서 그랬는데, 당신은 그래서 이랬군요.
조금 다른, 하지만 함께인 우리들
물론 버크만 진단은 정답이 아니고 확고한 기준이 될 수도 없다. 많은 성격 유형 검사는 동일한 함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개인형 진단 검사 결과는 결국 자신의 선호도인 ‘내가 바라는 나’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어떤 사람을 ‘보수적이고 편견에 가득 찬 사람’이라고 여기더라도 그 사람 스스로가 나는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진단은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쪽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또한 실제 적성이 관리 업무에 맞다고 하더라도, 창의적 업무가 내 적성이라고 믿는다면 역시 결과는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나온다. 검사 결과가 스스로의 답변을 바탕으로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한다.
또, 회사가 나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회사는 작은 사회이고, 누구에게도 최적의 온실 같은 환경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춥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덥다고 느낀다. 내게 최적화된 환경이란, 필연적으로 다른 성향의 사람에게는 못 견딜 환경일 수도 있는 것. ‘파란색’인 사람이 창의적인 환경을 원하더라도, 통계와 수치가 중요한 ‘노란색’ 조직이라면 개인에게 창의적인 업무와 환경을 만들어주긴 어렵다. 특히 기업 문화에서는 상사의 성향이 그 팀의 많은 것을 좌우하기 마련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팀장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을 선호하는 팀원이 있다면? 나는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을 선호하니, 간접적으로 돌려 말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회사는 일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며 때로 우리의 적성, 욕구, 희망을 누른 대가로 우리에게 고통과 기쁨과 월급을 동시에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크만 진단은 여전히 팀과 팀원에게 의미가 있다. 바로 그것은 서로의 다양성을 ‘알아보고 이해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최소한 ‘저 인간이 나를 엿 먹이려고 하는구나!’라거나, ‘나를 괴롭히려고 이러는 거야!’라는 오해는 피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이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한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보고 면담을 통해 상황을 조율해볼 수 있다. 어차피 회사란, 수백 개의 색깔을 가진 수백 명이 함께 일하는 곳이다. 사람은 달라질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고, 그것이 우리의 사무실을 보다 평화롭게 만들 것이다. 버크만 진단이 내게 남겨준 것이다.
버크만 진단이 궁금하다면
책 <버크만 프로젝트>에서 자세한 내용을 읽어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연구소에서 실제 진단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가장 간단한 베이식부터 리더십, 커리어 등 목적에 따라, 개인부터 여럿이 참여하는 그룹 등 인원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검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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