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 가기 전 알아야 할 몇 가지

더 이상 정신의학과가 터부시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다. 진료실에 들어서기 전, 의사와 얼굴을 마주하기 전에 당신이 알아야 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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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통은 다시 말하면 타인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이거든요. 그 고통을 이해받지 못해서 더 괴로운 것이기도 해요. 정신과 진료를 받고 상담을 하는 건 그 고통의 이면에 숨겨진 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찾아나가고 극복하고 치료를 하는 것입니다.” 정신의학과 전문의 김병수의 말이다. 예전과 달리 마음이 아프면 가는 병원이라는 인식이 많아졌음에도, 여전히 정신의학과에 가는 건 막연하며, 어렵고 두려운 일로 느껴 망설이지는 않나. 병원은 찾아갔지만 충분히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가. <마음의 사생활>, <감정의 색깔>, <당신이라는 안정제>(공저) 등을 쓴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의 김병수 전문의에게 ‘정신과’에 대해 우리가 궁금한 몇 가지를 물었다.

예전보다 정신의학과에 대한 인식이 개방적으로 변했다고 느끼시나요? 얼마 전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에서는 출연진 8명 중 5명이 정신의학과 약을 복용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많이 달라졌다고 느낍니다. 유명인들이 직접 경험을 털어놓은 것도 영향이 있었죠. 여전히 병원을 어려워하는 분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꼭 오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늘었어요. 꼭 와야 하는 분은 오지 않고요.(웃음)

어떤 증상이 있을 때 치료가 꼭 필요할까요? 
증상이 있는 경우입니다. 우울증, 불안, 몇 달간 지속되는 불면 증세 같은 것이죠. 원인이 갈등이라고 하더라도, 증상이 있다는 것은 스스로 관리가 되지 않고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이거든요. 소화불량, 두통, 피로, 가슴 두근거림과 같은 스트레스성 신체적 증상이 생긴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신호지요. 식욕, 수면, 성욕, 충동성에 관한 생리적 변화도 중요합니다. 세 번째는 생각이 변하는 거예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문제가 최소 2~4주 지속되면 확실히 증상이 생긴 거예요. 그러면 치료받아야 해요. 위와 같은 뚜렷한 증상은 없지만 괴로운 정도로는 치료 대상이 안 되느냐 하면 그건 아니에요. 대신 목표를 정확히 설정해야 하죠.

처음 병원을 찾은 사람이 가장 어려워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정신과 의사가 독심술사는 아니거든요. 의사는 환자의 언어는 물론 비언어적 표현까지 자세히 관찰하려 하지만 환자나 보호자가 명확히 표현하지 않는 것까지는 알 수 없어요. 병원에 오게 된 이유와 갈등 상황을 처음이라 어렵더라도 분명히 표현해주어야 해요. 특히 증상이 언제부터 얼마나 심각하게 나타났는지 등을 정확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부분을 숨기면 치료가 더디어질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정신과를 찾았지만 의사의 태도가 차가워 상처받았다는 경험담이 온라인에서 종종 발견됩니다. 환자가 정신과에 기대하는 지향점이 다른 것일까요? 
의사를 변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정신과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를 가진 경우일 수도 있어요. 뚜렷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처럼 누가 봐도 병리적인 문제가 있다면 의사는 좀 더 적극적이 되죠. 하지만 ‘직장 상사와의 갈등, 남편과의 싸움’과 같이 애매한 경우에 해당된다면 공감이 필요한 부분도 있고,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도 있을 수 있죠. 의사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봐야 하는데 문제를 가져온 본인 스스로 위로나 공감을 받고 싶었다면 충분히 공감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 있어요. 실제로 정신과 의사라고 해서 모두가 따뜻하지는 않아요. 직설적이거나 환자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게 치료에 더 효과적일 수 있거든요. ‘역설적 의도’라고 하는 치유 기법 중 하나예요. 위로의 형태가 꼭 공감의 형태는 아닐 수 있죠. 때문에 도움을 받고 싶은 부분을 선명하게 밝히는 게 좋아요.

치료 효과를 높이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정확하게 도움 받고자 하는 지점들을 선명하게 공유하는 게 좋아요. 치료 목표를 정확히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환자와 의사의 괴리가 덜 생기고, 시간도 단축할 수 있어요. 본인을 힘들게 하는 증상을 없애거나 완화하고 싶다는 것도 좋은 목표입니다. 반면 힘들다, 행복해지고 싶다 같은 건 막연하죠. 왜 이렇게 힘든지 스스로도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 저는 ‘같이 고민해보자’라고 말하거든요.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상담을 하면서 이어나가는 거예요. 문제가 분명치 않고, 무엇을 원하는지 혼란스럽고, 자기 자신도 뚜렷하게 문제를 밝히기 어렵다면 같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데까지 반복적인 상담이 필요할 수 있어요. 단기적인 해결책을 의사가 못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본인도 문제를 모르는데 점쟁이처럼 당장 해결책을 바라는 경우는 모순이니까 해결하기 어렵죠.

병원은 약을 타는 곳, 상담은 상담사와 하는 것이라는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인식을 갖고 계신 분이 많아요.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아요. 상담료도 저렴한 편이고, 약을 쓰게 되더라도 상담은 해요. 또 약으로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에 상담을 꾸준히 병행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약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내 많은 문제들 중 일부분이에요.

반면 정신과 약을 먹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 않나요? 많은 사람이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에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데요. 
정신과 약에 대해서 많이 개방적으로 바뀌었죠. 꼭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먹지 않겠다고 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처방에 관해서도 의사와 환자의 타협 지점들이 있어요. 불면증 환자에게 약을 쓰고 싶지 않은데 이미 수면제를 먹어봤으니까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죠. 반대로 항우울제가 필요하기도 한데, 본인은 당장 가슴 두근거리는 것만 없어지면 되니까 안정제만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항우울제는 꾸준히 먹어야지만 공황발작이 줄어들고, 예방이 되거든요. 흔히 말하듯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제가 생각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직업과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추는 거예요. 심각한 정신질환이 아니면, 환자의 백그라운드나 치료자의 스타일에 따라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해요.

병원을 쇼핑하듯 자주 바꾸는 경우는 어떤가요? 
정신과 의사들도 각자 스타일이 굉장히 달라요. 저희도 누가 어떻게 하는지 서로 잘 몰라요. 매번 다른 곳에 가는 것은 불필요하지만 적어도 한두 곳 정도 방문해 자신과 맞는 선생님을 찾는 것도 방법입니다. 정신과에는 뛰어난 명의가 없다고들 하는데, 바로 환자의 성향이 많이 작용하기 때문이죠. 정신과 의사는 나와 맞는 사람이 명의예요. 공황장애는 약물 치료 반응이 좋기 때문에 누구나 당장은 잘 치료하거든요. 공황장애의 경우는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이 관건이죠. 예방을 위해 유지 치료,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것입니다.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더 어렵고, 어떻게 접근하고 치료할 것인지는 선생님에 따라 다르거든요. 충분히 상담했는데도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다른 선생님을 만나보세요.

한 가지 조언하고 싶은 건, 우울하거나 불안한 상황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 감정적으로 중립일 때,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어요. 진료나 상담을 받게 되면 지금의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잘 알게 되죠.

20~30대 여성들이 가장 많이 내원하는 원인은 무엇인가요? 
불안, 우울, 무기력. 퇴근하면 재미도 없고, 연애도 하기 싫고 등등 이유는 다양하죠. 폭식하고, 토하거나 식욕 조절 문제. 거식증 때문에 오는 20대도 많아요. 불면증으로도 많이 오죠. 잠을 못 자는 것에 대한 불안함, 다음 날 회사 생활에 대한 걱정으로 오시는 분도 많고요. 술 문제도 있고요. 알코올 중독까지는 아니어도 감정적인 문제를 술로 해결하는 분 이 있죠. 젊은 여성 분들 중에서는 직장 생활로 인해 갑자기 공황발작이 생겨서 오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다이어트 약을 먹었는데 우울증이 왔다는 경우도 있더군요. 근거가 있나요? 
실제로 다이어트 약에는 각성 성분이 있어요. 약의 부작용으로 불안 증 세가 악화되기도 하고 불면증이 생기기도 하고, 약을 중단했을 때, 무기 력해지고 처지는 증상이 있어요. 부작용은 분명히 있어요. 장기간 복용 했을 때에는 폐동맥고혈압 같은 치명적인 병이 생길 수도 있고요. 약은 단기간, 꼭 필요한 경우에 일시적으로 쓰는 거예요.

환자 입장에서 치료 과정을 정리해 책으로 출판하는 경우도 있습니 다. 이런 책이 비슷한 증상을 갖고 있는 환자에게 도움이 될까요? 
정신과 상담을 받아봐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상담이 어떻게 이루어지 는지 전혀 모르고 오는 경우가 있어요. 정신과 진료가 어떻게 흘러가는 지 알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상담을 녹음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보시나요?
저한테 녹음해도 되냐고 물어보면 저는 하라고 해요. 하지만 그게 치료에 도움이 될까? 그건 절대로 아니에요. 본인이 치료에 집중해서 그 자리에서 많은 발전이 있어야 하는 게 맞죠. 모든 것을 언어적으로 기억하겠다는 것 자 체가 문제일 수도 있어요.

개원 전에는 대학병원에 계셨죠. 대학병원과 개인병원 각각의 장점 은 무엇인가요? 
조현병, 양극성장애, 조울증 같은 경우는 대학병원에서 진료받는 것이 훨 씬 더 좋을 거라고 봐요. 입원할 수도 있고, 응급상황도 있을 수 있으니까 요. 중한 상태이거나 콤플렉스 케이스처럼 자해, 자살 충동의 위험이 있 다면 아무래도 안전 시설이 있는 대학병원이 좋을 수 있어요. 대신 대학 병원의 단점은 상담 시간이 짧아요. 외래치료는 5~10분 정도에 불과해 충분한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 개인병원이 유리하죠.

예전보다 정신과 진료에 관한 의료보험 혜택이 늘었다고 합니다. 환 자에게는 실제로 어떤 이득이 있나요? 
원래 보험은 적용되었지만, 최근 본인 부담이 많이 줄었어요. 예를 들어, 30분 상담을 하면 본인 부담금이 2~3만원 정도 될 거예요. 약물 치료나 추가 검사가 있다면 비용이 추가되긴 하죠. 1시간 정도를 사설 기관에서 상담한다고 하면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기본 10~30만원 정도죠. 병원 진료보다는 비쌉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정신과 상담료가 가장 저렴한 나라일 거예요. 다른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그러니까 진 료가 필요하다면 돈 때문에 못 갈 이유는 없어요. 예전에는 기록이 남는 다는 이유로 보험 혜택을 받지 않는 환자들이 간혹 있었지만 점점 없어지 는 추세예요. 유명인들도 본명으로 진료를 받습니다.

주변에 진료를 받는 상황을 알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보시나요?
저는 알리라고 하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직장 동료처럼 약자가 될 수 있 는 관계에서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해요. 정말 친한 친구나 가족, 꼭 상의 하고 싶은 사람은 아는 것이 좋아요. 도움이 필요할 수 있고, 상의를 해야 하니까. 가족이나 배우자는 상담받을 때 함께 오라고 하기도 해요.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점을 보러 가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단기집중정신치료라고 할 수 있죠.(웃음) 누군가 들어줬다 는 느낌과 말을 했다는 환기 요법과 비슷한 효과를 주거든요. 그런 측면 에서는 똑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거죠. 단지 일회성으로 풀어놓는 것이라 면 그게 누구라도 상관없이 그 자체로 효과적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해결해야 할 문제가 분명히 존재한다면 그냥 털어놓기만 하는 것은 회피 일 수 있죠.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면 제대로 된 상담을 받는 게 좋습니다.

정신과에서 도움을 줄 수 없는 경우도 만나시나요? 
의사가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도 꽤 있는데, 솔직하게 해결할 수 없는 문 제라고 말해요. 인생의 고민, 답을 의사가 정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어 요. 예를 들면, 남자친구와 헤어져야 할까요? 회사를 그만둬야 할까요? 이혼해야 할까요? 같은 것이죠. 의사가 결정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 아요? 답은 함께 상의하고 상황을 논의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 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섣불리 답만 찾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한 가지 조언하고 싶은 건, 우울하거나 불안한 상황에서는 중요한 결정 을 내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 감정적으로 중립일 때, 합 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어요. 진료나 상담을 받게 되면 지금의 문제에 대 처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잘 알게 되죠.

병원을 다니는 것 외에 도움이 되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운동은 100% 도움이 됩니다. 불안, 우울, 공황장애 같은 증상들에 약물을 제외한 비약물적 요법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운동이에요. 명 상, 기도도 좋지만 효과의 강도를 비교해보면 운동이 제일 좋아요. 궁극 적인 치료의 목적은 ‘평온’만이 아닐 수도 있어요. 조금 괴롭더라도 본인 이 살고 싶은 삶의 방식과 구체적인 자기 삶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하 는 거예요. 빨리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힘든 상태라도 내가 할 수 있 는 무언가를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방법이에요.

<얼루어> 독자를 비롯한 20~30대 여성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 다면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너무 재능 있고, 가능성이 있고, 다들 똑똑한 사람들인데 위축되고 두려워하는 걸 많이 봐요. 용기를 내세요.

에디터
허윤선
포토그래퍼
Heo Jeong 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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