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찬란한 정경호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이어 <라이프 온 마스>로 쉴 새 없이 달려온 그는, 곧바로 차기작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를 택했다.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배우 정경호의 찬란한 오후 .
2018년의 수작으로 꼽히는 두 드라마가 있었다. 영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OCN <라이프 온 마스>와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다. 모두 배우 정경호가 주연을 맡았다. 우연이라기보다 그의 안목이 빛을 발했을 것이다. 특히 <라이프 온 마스>의 ‘한태주’는 인생 캐릭터가 되었다. 현재 그는 쉴 새 없이 달려온 2018년을 뒤로하고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그렇다고 마냥 쉰 것만은 아니다. 이미 내년 상반기 방영 예정인 드라마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라는 차기작을 결정했으니까.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는 ‘파우스트’를 소재로 한 오컬트 드라마로, 배우 박성웅과의 재회로 이미 화제다. 코믹, 멜로, 장르물까지 역할에 한계를 두지 않는 그가 보여줄 새로운 모습은 무엇일까? 또다시 정경호를 재발견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차기작을 꽤 빨리 결정했어요. 또다시 장르물이에요. 작품에 대해 확신이 섰나요?
민진기 감독님을 뵌 후에 작품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갖게 되었어요. 일단 대본이 너무 재미있어요. 시놉시스부터 건네받았는데, 너무 두꺼워서 대하 사극인 줄 알았어요.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더라고요. 대본이 재미있어서 바로 하겠다고 말씀드렸죠. 아직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몰라서 그걸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경험해보려고 해요.
<라이프 온 마스>가 끝난 후 대본이 밀려들었다고 들었어요. 정경호의 마음을 끄는 작품의 기준이 있나요?
작품이 재미있다고 느껴지면 감독님을 뵙는 편이에요. 어떤 작품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감독님, 작가님, 그리고 어떤 배우가 작품을 함께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1년에 한 작품 정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정말 좋은 분들만 만났으니 배우로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박성웅 배우와 만나게 됐죠?
성웅이 형과는 첫 만남 때부터 통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말장난을 하면서 서로 호흡을 맞추곤 했어요. 많은 사람이 성웅이 형을 굉장히 세고 남자다운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정반대거든요. 굉장히 수다스럽고 너그럽고 유쾌해요. 푸근한 아저씨, 동네 형처럼요. 그래서 항상 편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어요.
이번에 맡은 역할은 스타 작곡가라면서요?
네. 1월 초쯤 촬영을 시작해서 아직은 준비 단계예요. 음악을 다룬 콘텐츠들을 보고 있어요. 요즘 화제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세 번 봤고, 배우 브래들리 쿠퍼를 좋아해서 <스타 이즈 본>은 여섯 번 정도 봤어요.
<라이프 온 마스>가 끝난 후에는 뭘 하고 지냈어요?
포상 휴가를 다녀왔죠. 아버지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고요. 어제는 반려견 중 한 마리가 스케일링을 했네요.(웃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지로 택한 이유는 뭐예요?
원래 걷는 걸 좋아해요. 아버지와 예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사람들이 다 버킷리스트로 꼽길래 괜히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잘 몰랐을 때는 약 800km에 이르는 길을 전부 걸으려고 했어요. 허황된 꿈이었죠. 한 달씩이나 시간을 뺄 수가 없었어요. 마침 17일짜리 코스가 있더라고요. 중장년층을 위한 패키지였어요.(웃음)
산티아고에서는 무엇을 보고 느꼈나요?
처음에는 무언가를 보고 무언가를 느끼려는 목적으로 갔는데 막상 걷기 시작하면 눈앞에 보이는 건 똑같아요. 올리브와 옥수수가 펼쳐진 밭을 계속 보게 돼요. 하루에 8시간 넘게 20km가 넘는 길을 걸어요. 아침 먹고 4시간, 점심 먹고 4시간을 걷는 코스죠.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요. 무조건 일찍 자고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하거든요. 사실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보려 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다만 함께 걷는 사람들과 친해져서 이번 주말에 그분들과 경주에 다녀왔어요.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추천하고 싶나요?
네. 순례길을 걷는 자체가 의미 있는 일 같아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가보고 싶어요. 그 순례길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이 걷는다고 해요. 다만 전부 20대 혹은 50대 이상의 여행자인 거죠. 20대부터 40대까지는 퇴사를 하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찾으러 오지 않는 이상 올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게 좀 아쉬워요.
아버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아버지가 일로 많이 바쁘셔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어릴 때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지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고 시답잖은 이야기만 해요. 늘 서로 그리워하다 막상 만나면 싸우기도 하고요.(웃음)
아버지인 정을영 PD가 연기에 대한 조언도 많이 해주시는 편인가요?
그럼요. 제가 이 일을 점점 더 사랑하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수록 아버지가 이룬 것들에 대해 존경심이 더 커져요.
배우 정경호와 깊은 인연이 있는 PD는 한 명 더 있어요. 드라마 <무정도시>에 이어 <라이프 온 마스>에서 만난 이정효 PD죠. 이정효 PD와의 재회는 어땠나요?
호흡이야 말할 것도 없죠. 첩보 누아르물인 <무정도시>는 JTBC 초창기 드라마였어요. 언더 커버들의 이야기를 다뤄서 한 회당 무조건 액션 장면이 있었어요. 허리 디스크가 생길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에 비하면 이번 <라이프 온 마스>는 잠을 못 잤을 뿐이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종방연에서 이정효 PD가 고생한 정경호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봤는걸요?
그저 졸렸을 뿐이에요.(웃음) 촬영 감독님과 장난 삼아 얼마나 밤을 새웠는지 세어봤거든요. 거의 모든 신에 한태주가 등장하기 때문에, 28일 동안 매일 한두 시간 자고 촬영을 했더라고요. 그런데 <라이프 온 마스> 촬영 현장이 워낙 재미있어서 견딜 만했어요.
현장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가요?
다른 무엇보다 현장 분위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촬영을 하다 보면 반드시 지치는 때가 오거든요. 그걸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게 주변 사람들이에요.
‘한태주’를 정경호의 인생 캐릭터라고 꼽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해요?
일단 원작이 너무나 좋은 작품이에요. 대본도 좋았고, 촬영도 잘해주셨고요. 전 정말 대본에 있는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웃음)
원작의 명성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부담보다는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죠. 그리고 그 역할을 성웅이 형이 너무나 잘해주셨어요.
다행히 드라마에 대한 좋은 평가를 해주는 분이 많아요. 좋은 평가를 받으면 가슴이 뛰나요?
물론이죠. 다만 예전에는 연기를 정말 잘하고 싶었어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잘하고 싶지만, 요즘에는 다른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할까? 나는 못할 텐데, 대단하다’ 하고요. 집에서는 무조건 영화 한 편씩을 보고 자려고 노력해요. 좋은 배우들의 연기를 볼 때가 아직까지 가장 가슴 뛰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요.
영화 감상 외에 또 다른 취미가 있나요?
등산을 정말 좋아해요. 그런데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못하고 있어요. 집에서는 주로 호영이와 애봉이라는 강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내죠. 아침에 산책을 시키고, 집에 돌아와서는 씻고 밥 먹이고, 그 후에 나도 밥을 먹으면 벌써 오후 1시가 훌쩍 넘어요. 요즘 운동과 기타 연습을 하고 있는데, 애들을 집에 혼자 둘 수가 없으니까 놀이방에 맡겨두고요. 할 일을 마치고 다시 강아지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하루가 끝나 있어요.
벌써 한 해도 지나가고 새해가 됐어요. 2019년에 꼭 실천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일단 새 드라마에 집중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더 자주 할 생각이에요.
앞으로 대중들에게는 어떤 사람,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깨달은 확실한 한 가지가 있어요.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요.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려고요. 새 드라마에서의 새 모습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에디터
- 황보선
- 포토그래퍼
- AHN JOO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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