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에 가기
긴 겨울의 끝에서 가장 빠른 봄을 마주하고 싶을 때.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청정하고도 촉촉한 공기를 폐포 가득 가득 마시고 싶을 때. 식물원으로 간다.
세계 최초의 식물원은 1545년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세운 것으로 학문과 의학 연구가 목적이었다. 도둑이 노릴 정도로 귀한 약초가 가득했다. 1577년에는 파리에도 식물원이 생겼는데, ‘약초정원’으로 불렸다. 이후 루이 13세의 ‘약초 식물원’이 생겨났고, 루이 16세 무렵에는 식물 채집을 위한 식민지 원정 탐험과 식물학 연구가 성장했다. 마곡동에 문을 연 서울식물원은 그때 그 시절을 주제로 삼았다. 18세기 조선에 배를 타고 이국의 땅으로 건너가 캠프를 세우고 식물 표본을 채취하고 연구한 식물학자가 있었을 리 만무하지만 서울식물원 곳곳은 식물학자의 탐험 루트를 낭만적으로 오마주한다.
아직 임시 개장 중으로 곳곳에서 준비가 한창인 서울식물원. 그럼에도 실내 주제원만은 일찍 발걸음한 사람들로 붐빈다. 과거 식물탐험대의 삶을 낭만적으로 재현한 모습을 식물원 곳곳에서 만날 수 있으며, 실제 정원사의 도구 등도 전시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서울식물원은 교외와 지방에 집중된 식물원을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는 취지다. 공원과 식물원이 결합된 형태로, 어린이대공원과 비슷한 규모라고. 서울 최초의 도시식물원을 지향하는 이곳은 아직 남은 이야기가 많다. 작년 10월 11일부터 임시 개방하여 6개월간의 시범 운영 기간을 거친 뒤, 오는 5월에 정식 으로 문을 연다. 2020년에는 엘지문화센터가 준공될 예정이고, 2027년까지 식물 8천 종 이상 보유를 목표로 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식물원은 크게 열린숲, 주제원, 호수원, 습지원으로 나눠져 있고,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주제원은 주제정원과 온실로 나뉜다. 주제원 외의 야외 공원은 상시 방문할 수 있다. 습지원은 습지를 통해 계절에 따라 철새를 관찰할 수 있게 조성한 곳. 식물원 내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배수펌프장도 남아 있다.
현재 무료 개방 중인 서울식물원은 입고 있는 코트가 덥고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훈훈한 공기 속에 카메라 렌즈도 금세 습기가 가득할 정도. 유리보다 빛 투과율이 높은 특수비닐로 만든 지붕으로는 햇빛이 가득 들어온다. 열대와 지중해성 기후로 나뉜 세계 12개 도시 식물의 생태와 문화에 따라 식물들이 늘어서 있다. 정원사의 방에서는 이광수 정원사의 손때 묻은 도구들이 놓여 있다. 아직은 준비 기간이라 곳곳에서 정원사들의 분주한 손길을 마주할 수 있다. 모두에게 정원이 허락되지 않는 도시의 삶. 숲 속에서 오두막을 짓고 살 수 없다면, 식물을 조금이라도 가까이하면 되지 않냐고 말하는 듯한 곳. ‘Tree Huger’로 유명한 조안 말루프는 “우리가 나무를 대하는 태도를 다시 살펴보고 그 관계를 새롭게 맺는다면 우리는 다른 종과 관계를 맺는 방식도 좀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수천 종의 식물과 사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곳, 식물원에서 가장 이른 봄을 만났다.
INFO
1 임시 개장 기간 중에는 입장료가 무료다. 이후 5월 정식 개관 후에는 입장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2 주차장은 유료로 운영되나 10분당 2백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3 식물원의 온실과 주제정원은 오후 5시까지 운영되지만 마지막 입장 시간은 오후 4시다. 동절기인 2월 28일까지 이와 같은 기준으로 운영된다.
4 서울식물원의 웹사이트에서 다양한 프로그램 소식을 확인할 수 있다. 아빠와 함께하는 식물원 투어와 같은 숲문화학교, 손뜨개로 만드는 화분 커버 클래스 등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면 좋을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이 많다.
주소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로 161
문의 botanicpark.seoul.go.kr
- 에디터
- 허윤선
- 포토그래퍼
- CHA HYE 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