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드라마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거머쥔 요즘 드라마에서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포착한 칼럼니스트의 날카로운 시선.
좋은 엔딩을 찾아서
2019년 1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SNS와 드라마 커뮤티니에는 물음표만 무수히 떠다녔다. ‘응?’이라든가, ‘헉?’이라든가 경악을 나타내는 감탄사 이외에는 달리 그 드라마의 엔딩을 즉시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렇게 끝인 거야?”라는 반응 이후에는 실망과 허무감을 표현한 글이 쏟아졌다. 얼마 후, 한국 TV의 겨울 센세이션이었던 <스카이 캐슬>이 종영했을 때는 격한 반응이 더했다. 분노의 불길이 소돔과 고모라에서처럼 치솟아 스카이 캐슬이라는 궁전을 다 태워버리는 줄 알았다. 방영 당시에 ‘폭발적’ 관심과 애정을 받았던 만큼,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결말에 이르자 말 그대로 부정적인 반응이 터져서 화재처럼 번져갔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엔딩에 시청자들이 분노했던 이유는 좋은 이야기라면 존재해야 하는 요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완결된 기승전결의 구성, 혹은 시쳇말로는 ‘떡밥 회수’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AR 게임과 현실이 중첩되면서 생겨나는 미스터리가 있었다. 보통 성의 있는 스토리라면, 어느 정도 자기 설정을 설명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기 마련이다. 이 드라마는 게임의 설정이나 현실의 의문을 하나도 풀지 않았다. 게임 개발자인 세주가 가상의 피난처인 인스턴트 던전에 숨어 있었다면 실체인 몸은 1년 동안 어디 있었으며, 주인공인 진우는 버그가 되어 사라지고도 살아 있는 게 어떤 설정으로 가능한가? 매트릭스의 중첩으로 설명한대도, 그는 1년 후에 어디에 있는가? 설명은 시청자가 알아서 찾고, 주인공의 운명은 그림자 속에 맡긴다.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이 드라마를 설명한다고 해도 빈자리는 여전하다. 물론 작가는 웹툰 세계와 현실이 겹쳐지는 전작 <W>에서도 결말을 그저 시청자의 너그러운 이해에 맡긴 경향이 있었다. 드라마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농담이 있다. “송재정의 세계에서 체호프는 없다”라고. 체호프의 유명한 말 “이야기에서 총이 나온다면 그 총은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에서 유래한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는 등장했지만 쏘아지지 않은 총이 너무 많았다.
<스카이 캐슬>은 똑같이 ‘파국 엔딩’이라고 해도 이 드라마는 스토리 공학적으로는 나름대로 완결된 결말이 있었다. 다만 이 결말은 이 드라마가 앞에서 제시했던, 혹은 제시했다고 시청자들이 믿었던 문제의식을 스스로 배반했다. <스카이 캐슬>은 방영 첫 주에 ‘아들을 서울 의대에 보낸 성공한 엄마’ 영주가 자살하는 장면으로 사건의 문을 열면서, 교육과 신분 상승에 대한 준 상류층의 열망과 좌절을 거리감을 두고 비판하는 드라마로 순식간에 소문이 났다. 거기에 여성 중심의 사건 진행, 블랙 코미디적인 색채와 자녀 세대인 청소년들의 관계에 학원물적인 분위기가 덧입히면서 드라마의 세계는 작가와 제작진이 의도한 이상으로 확장되어나갔다. 제작진은 이런 드라마 외적인 하이퍼텍스트를 잘 이용해서 영리한 드라마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자, 스카이 캐슬의 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여러 사건은 그들의 행복을 질투한 학습 코디네이터 김주영의 음모였던 것으로 처리해버리고 자신들만의 화해를 지루하도록 길게 누렸다. 견고한 계급의 성을 뒤흔들러 들어온 소녀 혜나의 삶과 죽음도 완벽한 가족들의 균열과 봉합을 위한 도구로 써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강준상 가족이 납골당에 가서 혜나의 죽음을 추모하는 장면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진다. 혜나의 독사진 옆에 강준상 가족사진을 놓는다는 설정은 그들이 모두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였다고 해도 이제는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그들 사이의 간극을 더욱 강조하는 듯 보였다. 세속적 욕망으로 계급을 나누고 타인을 희생시키려고 했던 이들은 커다란 삶의 변화도 겪지 않았으며 모두 두 부모가 온전히 있는 ‘정상 가족’이라는 허상의 관념 속에 남았다.
어쩌면 두 드라마의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두 드라마는 괜찮은, 혹은 대단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고 주된 소득 중 하나인 PPL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며 배우들도 각자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16회, 20회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을 하나의 이야기에 보내고, 거기 등장하는 인물의 운명에 자신을 이입하는 시청자들은 일종의 감정적 외상을 입었다. 실제의 인생처럼 기대는 늘 배반당하고, 삶의 대체로서의 좋은 이야기조차 가질 수 없었다.
시청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주체적인 결정은 드라마가 잘못 흘러간다고 느낀 순간 그만 보는 것뿐이다. 넷플릭스의 <밴더스내치>처럼 인터랙티브 드라마처럼 시청자가 전개를 선택하는 드라마도 엔딩은 뜬금없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이미 어느 순간부터 세계관이 너무 비대해졌고 구멍 난 설정을 메울 가설을 쓰는 건 팬들의 몫이었다. <스카이 캐슬>은 처음부터 캐릭터가 스토리를 끌고 가게 하지 않았고, 사건이 생겨나도록 캐릭터들을 일관성 없이 편의적으로 움직였다. 어쩌면 시청자가 원래의 드라마에 없었던 것에 허망한 기대를 걸었는지 모른다. 둘 다 실망스러운 결말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쓸데없이 시간과 감정을 투자해버렸는지도 모르고, 그건 오롯이 나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시청자는 분노할 권리가 없다고, 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끝까지 붙들고 있었느냐고 해버릴 수 있을까? 드라마는 모두 환상 위에서 건설된 세계이고, 시청자들을 현혹하는 것만이 목적이므로 결말에는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나? 의미 있는 이야기가 완성되리라는 바람은 헛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도 결국은 시청자가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비판의 반응이든, 다음에 보여줄 시청률이든 간에.
한편 좋은 드라마를 더 지지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시청률과 화제성은 높지 않았다 해도 극적 구성과 섬세한 장면 구성, 의미 있는 사회적 메시지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드라마가 있다. 끝까지 자기 이야기를 완성한 드라마가 있다. 좋은 드라마는 시청자는 그저 시청률 수치로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이야기의 감상자로서 기대와 감정을 존중받을 수 있다는 말을 건네준다. 그것이 감동이 된다.
– 박현주(소설가)
막장의 품격
어떤 드라마에 대해 ‘저거 막장이네 막장’ 하고 내뱉는 순간, 그 드라마는 가장 저급한 무엇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존속살인도 서슴지 않고, 그 복수를 위해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며, 선인과 악인으로 나뉘어 온갖 계략으로 서로 번갈아 등쳐먹는 이른바 막장의 기본 요소를 바탕으로, 물을 끼얹고 김치로 싸대기를 치고 차로 밀어버리고 기절, 마비, 살해용 약을 먹이는 악행의 장치 탑재. 뻔하다면 뻔하고 유치하다면 유치하다.
그런데 막장이 그렇게 나쁜가? ‘막장이네’ 속의 비아냥은 사실 어느 정도 시청률을 담보하고 있다. 이른바 ‘욕하면서 본다’가 성립되는 게 바로 이런 드라마다. 지난 연말부터 올해 2월에 걸쳐 수목드라마 최강자였던 <황후의 품격>의 15퍼센트 넘는 시청률이 그 좋은 예다. 그 기둥은 일일 드라마 <아내의 유혹>, 주말 드라마 <왔다! 장보리>, <내 딸, 금사월>, <언니는 살아있다>를 연이어 히트시키고 비교적 젊은 시청자층이 자리한 수목대로 넘어온 <황후의 품격>마저 (시청률 면에선) 성공으로 이끈 김순옥 작가다. 그의 막장은 문영남이나 임성한 등 다른 막장 작가의 작품과는 좀 다르다. 그의 드라마에는 삶의 구질구질함이 빚어내는 짜증이나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듯한 도도함이 없다. 유머도 헛웃음 나오는 유치함보다는 귀여운 쪽에 가깝다. 얼굴에 점 하나만 찍으면(<아내의 유혹>), 살만 빼면(<황후의 품격>) 울트라급 변신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일종의 김순옥식 유머다. 악행만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으나 모자라고 어설프고 나약한 악인 황제에게 웃음이 터지고 마음이 쓰이는 것도 김순옥식으로 악인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불행한 누군가가 죽으려 하다가 ‘이 드라마 내일 내용이 궁금해서 못 죽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모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김순옥의 막장은 ‘기다리게 만드는’ 드라마로서 가치가 있고 이번 드라마 또한 그 역할에 충실했으니 됐다.
다만, <황후의 품격>이 이전 김순옥 드라마보다 덜 기다려졌다면 그것은 일단 수목으로 끌고 오면서 좀 젊게 포장한 입헌군주제라는 판타지적 설정이 드라마 전반적 톤과 잘 어우러지지 않고 계속 삐걱댔기 때문일 수 있다. 게다가 연민정(이유리 분, <왔다! 장보리>), 신애리(김서형 분, <아내의 유혹>), 양달희(다솜 분, <언니는 살아있다>)처럼 캐릭터 이름으로 오래 기억될 만큼의 매력적인 악역이 <황후의 품격>에서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드라마 내용으로도 이미 과한데 이보다 더 과하게 널뛰려 하는 연출까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어쨌든 김순옥 작가는 다시 자신의 놀이터인 주말로 돌아오길 바란다. 품격은 걷고 극강의 막장을 장착하고.
– 이현수(media 2.0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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